하나님의 생명이 가정에서 열방으로
에 츠 선 교 회
H-ETS MISSION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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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는 가정의 부모와 조부모는 자녀와 후손에게 복음을 전하고 신앙을 전수하며, 열방에 생명나무를 심어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이루어 간다.
H-ETS 에츠는 히브리어로 "나무" 라는 뜻입니다.
에츠 (ETS 남성명사)는 기본 어근이며, '나무, 목재'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남성 명사는 329회 사용되고 '나무'를 뜻하는 기본 용어이며, 또 한 목제품을 뜻하기도 한다. 이 단어는 통상 셈어이며, 우가릿어 ('나무', '포도나무'), 아카드어, 아랍어, 아람어에서도 발견된다.
명사 에츠는 구약성경 전반에 두루 사용되며, 예언어, 선지서, 성문서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단수형은 집합적으로 '나무들' trees 이라는 의미(예, 레 26:20, "땅의 나무")로, 혹은 하나의 나무 (예, 잠 11:30,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창 2:9을 생각나게 하는 구절이다)를 가리켜 사용될 수도 있다. 복수형은 또한 서있는 나무들에 대해 사용된다 (참조, 욜 1:12, 사 7:2 등). 복수형은 보다 더 자주 재목 (왕상 5:18[H32]), 불쏘시개 (왕상 17:10, 12), 희생제 사용의 장작 (창 22:3 이하), 목제품 (출 7:19)으로 사용되는 베어 넘어뜨린 나무를 가리킨다.
단수형 에츠도 마찬가지로 베어 넘어뜨린 재목을 가르치기도 한다. 몇몇 실례는 다음과 같다. 나무로 만든 우상 (호 4:12, KJV '줄기' stocks, 한글 개역 "나무"), 재목 (학 1:8), 나무판 벽널 (겔 41:16), 나무 그릇 (레 11:32), 나무 자루 (신 19:5, 한글 개역 "자루", KJV '자루' helve), 막대기 (겔 37:16이하), 자루 (삼하 23:7, 창 "자루"), 교수대 혹은 장대 (창 40:19 - 아마도 말뚝에 찔러 꿰는 사형을 처하는 데 사용되는 막대기) 등.
구약성경에서는 많은 종류의 다양한 나무가 언급된다. 성경에 열거된 특수한 종류의 재목들에 다음이 포함된다.
고페르 (gopher, 노아 방주의 재목, 창 6:14, 이 나무의 종류는 아직도 의문시 되고 있으나 아마도 소나무나 삼나무 종류일 것이다), 아카시아 (성막의 구조물에 사용됨, 출 25:5이하, 한글 개역 " 조각목", KJV는 'shittah'와 'stittim'), 백단향 류 (almug, 혹은 algum, 성전에 사용됨, 왕상 10:11이하, 아마도 Juniperus phoenicea excelsa, 우가릿어 'lmg, 한글 개역 "백단목"), 삼목 (cedar, 성전에 사용 됨, 왕상 6:9, 한글개역 "백향목", 구약성경에서 레바논의 백향목은 거대한 목재를 제공해주는 것 으로 이름나 있다), 소나무 (pine, 건축에 사용됨, 왕상 5:8이하, 어떤 권위자들은 히브리어 '베로 쉬'($1265)를 '노간주 나무 종류' juniper 혹은 '삼나무' cypress로 번역한다. 한글 개역 "잣나무"), 감람나무(olive, '감람나무'는 구약성경에서 종종 발견된다. 때로 '에츠 셰멘'을 '기름 나무' tree of oil라고 읽기도 한다. (예, 왕상 6:23 "감람목")
에츠가 '재목' timber, lumber 이 아닌 '나무' tree를 의미할 경우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갖가지 종류의 나무를 가리킨다 (참조, 창 1:11-12, 창 1:29). 시 1:1-3 의 의로운 자에 대한 묘사를 읽을 때 독자는, 특히 독자가 삼림 지역 출신이라면 나무에 대한 묘사에 정서적인 '쇽' (wallop) 및, 아울러 훌륭한 상징적인 댓구법을 놓쳐서는 안된다. 팔레스틴, 특히 남부 지역의 나무는 다소 특별한 면이 있었다.
에덴 동산의 나무에 대해 생각해 본다. 에덴의 특징은 나무의 풍성함 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좋겠다 (창 3:9). 남부 팔레스틴의 오아시스는 숨 막힐 듯한 더위의 피서지였으며, 휴식과 원기회복의 장소였다. 그러나 이 오아시스는 또한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풍부한 물과 우거진 숲이 있는 동산을 미치도록 생각나게 하는 것이었다.
그 하나님의 동산에 최고로 중요한 두 개의 나무가 있었는데, 그것은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 게 하는 나무였다. 우리는 이 두나무에 관하여 "비록 고지식한 것 같이 여겨질지 모르지만 문자 적(실제적) 의미를 전해주는 것이 많다"고 말한 키드너 (kinder)에 동의한다.
이 두 개의 나무는 마술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인간이 하나님의 뜻과 대결하는 수단, 즉 "인간이 그의 전 존재로 '예' 혹은 '아니오'를 결정하게 하는" 수단이었다(Genesis, p. 62). 하나님께서 이 두 나무들을 벽이 아니라, 그의 말씀으로 울타리를 쳐서 둘러 막은 것은 도덕적으로 의미가 있다.
한 나무, 즉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밑에서 시작된 인간의 죄 (창 2:9 이하)가 또 다른 나무, 즉 갈보리 십자가에서 그 해결책을 발견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성경 신학의 Heilsgeschichte, 즉 구속의 방향에서 나무의 사용 (용법)에 시적인 정의 (justice) 가 존재한다. 그 태초의 나무 가지 아래서의 여자 (와 남자) 에 대하여 승리한 사단은 영광의 왕이요 지혜의 화신이 죽으신 십자 모양의 또 다른나무 아래서 그 자신이 패배하고 말았다. 따라서또 다른나무,말하자면 에덴동산(창 3:9, 창 3:22, 창 3:24) 으로 부터 옮겨 심기워져서 다가오는 새 세상의 거민들에게 유효하게 될 새 예루살렘의 "생명 나무" (계 22:2)가 존재하는 것이다. (참조: R. B. ALLEN; BDB).(p1110-1111*).
목재 wood, 막대기 pole, 교수대 gallows, 나무 tree, 십자가 cross.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크쉴론은 살아있는 나무나 죽은 나무를 의미한다. 그러나 크쉴론이 '살아있는 나무' (tree) 라는 의미로는 드물게 사용 되었다.
크쉴론은 보통 건축 자재, 연료, 그리고 도구들과 제의 기구를 만드는데 사용된 재료로서의 '나무나 목재'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Dem.45, 33; Hesiod, Works 808). 그리고 몽둥이, 곤봉, 및 노예 와 정신이상자와 죄인들에게 사용하는 막대기, 받침대, 마구 (collar) 등의 형태로 만들어진 고문과 처형 기구에 대해 사용되었다. 크쉴론은 비유적으로 '무표정하거나 감정이 없는' 사람에 대해 사용 되었다.
2. 70인역본의 용법
크쉴론은 70인역본에서 약 280회 나오며, 대부분 히브리어 에츠 (나무, 수목, 목제품, 줄기, 막대기, 교수대) 의 역어로 사용 되었다.
70인역본에서는 일반 헬라어에서 보다 '살아있는나무' (tree)라는 의미로 더욱 자주 사용 되었다. 예를 들면, 과수, 삼나무,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들 (창 1:11; 시 14:8; 시 1:3), 그리고 각종 나무와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창 2:9) 등이다.
살아있는 나무들은 또한 제의의 장소이며, 우상숭배의 장소가 되었기 때문에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강하게 공격했다 (렘 3:6; 렘 3:9; 렘 3:13).
크쉴론은 죽은 나무라는 의미에서 '목재, 연료, 건축 자재' (창 6:14; 출 25:10이하; 왕상 6:15), 고문 기구 (참고: 욥 33:11)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3. 신약성경의 용법
크쉴론은 신약성경에서 20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
(a) 나무 wood.
눅 23:31에서 예수님께서 골고다로 가는 길에 말씀하신 것은 푸른 나무와 마른 나무를 대조 시킨 것으로서 매우 돋보인다: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예수님은 자신을 푸른 나무에 비교하고, 유대인들은 마른 나무에 비교하신다. 그는 지금 십자가와 죽음으로 가는 길에 계셨다. 만일 그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했더라면, 얼마나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은 나무처럼 심판의 화염 속에서 타버리겠는가? 무죄하신 예수님이 그런 운명에 처하신다면 죄 많은 예루살렘은 어떤 운명에 처하겠는가? (참조: J.M.Creed)
푸른 나무와 마른 나무 사이의 대조에는 시간의 요소도 함축되어 있는 것 같다: 만일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고전 3:12에서 바울은 기독교 공동체의 사람들, 특히 교사들에게 엄숙히 말한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여기에서 나무라는 말은 금에서 짚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재료에 관한 문맥에 나타난다. 바울은 그들이 전체 활동에 임하는 심판을 언급한다. 교회에는 오직 하나의 터 (기초 Foundation) 만이 있을 수 있으며, 그것은 곧 그리스도 이시다. 그래서 인간이 공동체를 위한 다른 어떤 기초도 닦 을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기초 위에 여러가지 형태의 건물들을 지을 것이며, 이 모든 것들은 불로 시험 받게 될 것이다. 금이나 은이나 보석처럼 소멸 되지 않고 남아 있으며상을 받을 것이나, 비록 그 터가 남아 있다하더라도 나무나 짚처럼 소멸해 버릴 것들은 다 사라져 버릴 것이 다. 사람의 공적은 다 타버릴 것이나 그 자신은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니라.
크쉴론은 계 18:12에서 목재를 의미하며 땅의 상인들의 상품들 중에 나타나는데, 바벨론의 멸망 후에 이미 살 수 없는 것이 되었다.
(b) 무기, 곤봉 cudgel.
마 26:47; 마 26:55; 병행구, 막 14:43에서 크쉴론은 무기로 나타난다: "말씀 하실 때에 열 둘 중에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그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c) 착고 stocks.
행 16:24에서 크쉴론은 죄수의 발에 채우는 '착고'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d) 십자가 cross.
신약성경에서 크쉴론의 독특한 용법은 '십자가'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행 5:30; 행 10:39; 행 13:29에서 크쉴론은 십자가를 묘사한다.
행 5: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행 10:39,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행 13:29,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이 말은 신 21:23의 말씀을 상기시키며, 십자가 형벌의 수치스러움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나무에 달린 경우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자가 사건은 예수님께 있어서 아마도 가장 모욕적인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심으로써, 그의 위엄을 나타내셨다.
갈 3:13에서 크쉴론도 같은 의미를 가진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신 21:22에 따라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심으로써, 우리를 저주로부터 구속하셨음을 보여 준다. 저주는 율법을 깨뜨린 사람들에게 임한다. 그렇지만 율법을 깨뜨리지 않은 그리스도는, 저주받은 나무 위에서 죽은 그의 죽음이 분명하게 말해주듯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대신하여 저주를 받으셨다. 이렇게 해서 그는 저주와 이 저주가 수반하는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지셨으며 우리를 위하여 율법의 저주를 당하셨고 그의 죽으심으로 그것을 파괴하셨다(참조: 고후 5:21).
벧전 2:24에서도 크쉴론은 '십자가'를 묘사한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이 구절은 분명히 사 53:4; 사 53:12과 관련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대리적인 요소가 두드러진다. 그 나무, 곧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신 그리스도의 몸이 죽임을 당한 장소이다. 십자가에서 그의 육신의 죽음을 통해서 죄는 제거되었다.
(e) 생명나무. 계 2:7에서 크쉴론은 "생명나무"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아담과 하와에게 금지되었던 것이 새 창조 세계에서 허용된다.
계 22:2에 보면 새 예루살렘에서는 생명수 강 양편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다(계 22:2).
계 22:14; 계 22:19에서 의로운 사람만이 생명나무에 나아갈 수 있다. 살아있는 나무는 생명을 상징하며 나무로 된 처형 기구로서의 십자가와 대조된다. 그러나 십자가의 의미는 여전히 계속된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지고가서 수난과 죽음을 극복하신 장소이므로 그는 죄와 죽음을 이긴 세상에 생명을 부여하실 것이다(계 22:14). (참조: B. Siede; J. Schneider).